1988년 8월 23일 건설회관 3층 회의실에서 차철환 교수 등 34명의 발기로 대한산업의학회가 창립되었다.
학회의 역사적배경
1988 대한산업의학회의 설립
학회 연혁
1980
역사적 배경
1980년대는 518민주화운동에 이은 6월 민주항쟁으로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드높았던 시기였다. 6월 항쟁 다음 해였던 1988년 7월, 당시 15세였던 문송면 군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하였고, 80년대 초부터 문제가 되었던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사건의 피해자와 가족들이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직업병이 방치되고 있는 열악한 노동현장에 대한 사회적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물로 1989년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다. 개정안은 산업재해예방기금 설치,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노동자 대표의 참여보장, 산재예방교육의 의무화 등을 담았으며, 1989년 노동부에 산업안전과 외에 안전기획과 및 산업보건과가 신설되었다. 1992년에는 산업안전보건공단 산하에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개원하였다. 이 시기에 노동부는 산업의학전문의제도 도입, 산업의학과 신설, 산업안전보건감독관 증원 등 실질적인 직업병 종합대책이 세웠다.
1980년 이전의 역사
1961 근로자보건관리규정에 따라 근로자건강진단 본격 실시
1963 가톨릭의과대학 부속 산업의학연구소와 대한결핵협회가 건강진단과 작업환경조사 실시
1972 최초로 특수건강진단 실시 및 작업환경측정 실시
1977 근로복기공사 설립 일부지역광산근로자 대상 건강진단실시
1981 산업안전보건법 제정
1983 특수건강진단기관지정제도 신설
1984 근로복지공사내 진폐연구소 설치
1984 진폐의 예방과 진폐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공포
1984 산업위생관리기사자격시험 시작
1988년 8월 23일 건설회관 3층 회의실에서 차철환 교수 등 34명의 발기로 대한산업의학회가 창립되었다. 학회 창립의 배경에는 직업병 문제가 사회의 주요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고, 산업보건협회체제로는 더 이상 대처가 어려우며, 예방과 산업위생 중심의 산업보건에서 임상적 능력을 갖춘 산업보건의사가 요구되고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 학회는 기존의 산업보건전공 예방의학전문의, 임상전문의 및 산업현장 보건관리자들을 학회에서 체계적으로 교육시켜 이들을 산업의학전문의로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우리나라가 지난 4반세기의 짧은 기간 동안에 고도의 산업화를 이루어 놀라운 사회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자원과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이 나라에서 오로지 인력에 의지하여 놀라운 발전을 가져오느라고 애쓰신 사회 각계 인사의 노력과 성과를 이에 치하하여 마지않는 바입니다.
그러나 산업화의 과정에서 적지 않은 수효의 근로자가 산업재해와 직업병에 시달리게 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돌이켜 보건데 근로인의 건강증진을 위한 노력은 대한산업보건협회를 중심으로 산업의학 분야에 종사하는 여러 선배와 동료에 의하여 적지않게 기우려졌고 또 볼만한 성과를 거두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근저에 직업병과 산업재해가 사회의 비상한 관심거리가 되면서 이러한 일들은 우리 내부와 외부에 걸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또 반성하게 하였습니다. 그중에서 으뜸가는 일은 산업의학에 종사하는 의료인의 자질향상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간 국내외을 막론하고 산업의학에 종사하는 의료인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인구집단에 대한 건강관리기술과 환경위생기술에 치우친 나머지 개인의 건강이상에 대한 진료기술에 있어서는 미흡한 점이 없지 않았었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산업의학에 종사하는 의료인의 친목과 학술 교류를 도모하는 동시에 직업에 연유하는 건강 이상자 관리와 예방 기술을 겸비하여 작업현장에서 근로인의 건강향상 실무에 종사할 수 있는 전문 의료인의 양성을 기하고자 합니다. 뜻을 같이 하시는 선배 동료 여러분의 동참을 바라마지 않는 바입니다. (1988년 8월23일 창립 발기인 일동)
창립총회 주요결정사항
차철환 교수가 임시의장을 맡아 회의를 진행하고, 회칙(안)이 통과된 후, 전형위원(이승한, 문영한, 윤덕로, 황인담, 차철환)의 투표결과 회장 이승한, 부회장 차철환 교수가 선출되었음. 감사는 황인담, 남택승 교수가 선출됨